본문 바로가기

버스정거장에서 / 오규원

by 기운찬우연 2023. 1. 12.

노점의 빈 의자를 그냥
詩라고 하면 안 되나
노점을 지키는 저 여자를
버스를 타려고 뛰는 저 남자의
엉덩이를
詩라고 하면 안 되나 
 
나는 내가 무거워
詩가 무거워 배운
작시법을 버리고
버스 정거장에서 견딘다 
 
경찰의 불심검문에 내미는
내 주민등록증을 詩라고
하면 안 되나
주민등록증 번호를 詩라고
하면 안 되나
안 된다면 안 되는 모두를
詩라고 하면 안 되나  
 
나는 어리석은 독자를
배반하는 방법을
오늘도 궁리하고 있다 
 
내가 버스를 기다리며
오지 않는 버스를
詩라고 하면 안 되나
시를 모르는 사람들을
시라고 하면 안 되나 
 
배반을 모르는 시가
있다면 말해보라
의미하는 모든 것은
배반을 안다 시대의
詩가 배반을 알 때까지
쮸쮸바를 빨고 있는
저 여자의 입술을
詩라고 하면 안 되나  

'' 카테고리의 다른 글

여동생 옥희에게 쓴 편지 / 이상  (0) 2023.02.13
오래된 기도 / 이문재  (0) 2023.01.15
아침 / 이상  (1) 2023.01.12
미사에 참석한 이중섭 씨 / 김종삼  (0) 2023.01.12
하늘 / 박노해  (0) 2023.01.12

댓글